vol 12 >> 이 한 권의 책

이 한 권의 책

강옥선 (동서대학교 영어학과)

 
제인 오스틴의 엘리자베스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이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에서 창조해낸 인물, 엘리자베스는 내가 처녀시절에 늘 꿈꾸었던 여성상이다. 문학소녀시절부터 나는 재기발랄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간직한 엘리자베스가 어쩌면 제인 오스틴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서 글쓰기에 전념하는 여성에 대한 한없는 동경을 품었다. 요즘같이 가을이 깊어가고 낙엽이 뒹구는 시즌이 되면, 다시금 오래전의 상념에 빠져들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결혼생활을 상상하면서, 소설의 제 이편을 나름대로 그려보는 것이다. 아쉽게도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두 사람의 연애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그 이후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상상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중산계급에 속한 평범한 베넷 가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 그녀는 수수한 용모의 주인공답게 내면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영국의 19세기 초반, 아직 여성에게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대에, 엘리자베스는 집안에서 독서와 파티를 즐기는 혼기의 처녀로 등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늘 거침없이 표현하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심적인 인물이다. 여성의 공교육이 일반화되고 전문직을 선호하는 21세기 패러다임에 비추어보면 엘리자베스가 추구한 자아정체성은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 성숙이라는 진솔한 가치를 전해준다.

     

      사실 오랫동안 정치와 역사는 여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글쓰기는 더욱 더 여성의 몫이 아니었다. 여성에게 침묵이 강요되고 성적 억압이 당연시되었던 사회에서 오스틴은 오히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1800년 초반 아직 여성에게 재산권과 투표권이 인정되지 않았던 규범화된 영국사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서 개성이 있는 여성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여성의 생각과 행위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하였다. 어쩌면 오스틴은 당대로서는 필수이었던 결혼대신에 글쓰기를 택하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을 집필하던 무렵 선배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여성권리 옹호론>(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을 1792년 출판하였다. 선배작가의 여성교육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오스틴에게 여성의 입지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비춰주었다. 비록 오스틴과 울스턴크래프트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여성작가와 독자와의 교류도 영감을 주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엘리엇(T. S. Eliot)이 1920년 이미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한 작가의 상상력은 선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스틴과 엘리자베스의 삶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와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특히 여성 작가의 작품세계는 이미 그 자체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어느 순간 나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200년 전 오스틴이 그려낸 엘리자베스와 오만한 다아시의 사랑 이야기는 영국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게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아래 현실 속의 나와 나의 두 딸과 이웃의 현실을 주시하게 하는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개성이 강한 엘리자베스와 오만한 다아시의 대화는 소설 전체에서 가장 재미있는 언어적 표현이다. 편견이 강한 엘리자베스는 신분이 높은 다아시가 청혼을 하자, “상대방이 고백한 애정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저는 당신의 호의를 기대하지 않고 있답니다”라고 답변한다. 당연히 “예스”를 기대하는 다아시의 오만함에 저항하여 독자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엘리자베스의 대담한 태도는, 바로 여성도 가문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여성권리 선언문‘이다. 엘리자베스의 긍정적 태도는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씽(Doris Lessing)이 자기 집 앞에 몰려든 기자에게 한 말, “나는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써 글을 쓰고 있답니다”에서 재확인된다. 레씽의 독자적인 태도는 200년의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오스틴의 목소리가 되어 메아리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견지하였기에, 마침내 다아시와의 동등한 사랑을 성취해내는 쾌활한 엘리자베스는 어여쁘고 순종적인 언니 제인보다는 당연히 작가 오스틴의 자화상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감성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 여성에게 요구되는 정확한 자기표현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오스틴이 창조해낸 여성 주인공의 특성이 되고 있다.

     

      오스틴이 창조해낸 엘리자베스는 일터에서 흔히 만나는 독자적이고 자긍심을 지닌 쾌활한 아가씨이며, 출신계급의 한계를 무시하는 등, 사회적 관습에서 한참 벗어난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급진적 성향의 여성 주인공은 오늘날 평범한 현대여성의 이미지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갈등과 화해는 현대여성이 추구하는 낭만적이고 동등한 사랑의 방식에 대한 하나의 역할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당대의 독자들을 뛰어넘어 후세의 독자에게도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제공하는 선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독자들이 인생행로에서 때로 길을 잃고 헤맬 때, 작품 속에서 만났던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갈등은 하나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오래전 나침반을 가슴에서 꺼내어 삶이 방향타를 다시 조종하고 맞추어 보는 것이다. 그 까닭으로 우리는 매일 절망하지만 중도 하차하지 않고 마치 깜깜한 바닷길의 작은 조각배 하나 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존재는 나만의 것이기 보다는 역사 속에서 창조된 또 하나의 새로운 인물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