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0 >> 초청작가 칼럼

초청작가 칼럼

김성일 (한세대 겸임교수, 창조사학회 부회장)
 
방황의 추억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주일학교부터 입학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교회를 떠났다. 문학 수업을 위해 철학서적을 찾아가며 읽다가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푸는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생활은 친구들이 이해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험적이고 무질서했다.


대학은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지원했다. 당시에도 입학시험을 친 다음 면접 고사가 있었는데 내 행색부터가 다른 입시생들하고는 너무 달랐다. 머리는 길게 기른 장발이었고 멀쩡하게 개인 날씨인데도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면접하던 교수님 중 한분이 내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을 때 서슴치 않고 프리드리히 니이체를 대었고 그 이유를 묻자 니이체의 철학을 일사천리로 설명했다.


다행히 나는 공과대학에 합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면접 때 내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던 교수님은 교양과목의 철학 교수였고 놀랍게도 니이체 전문가였다. 그분은 내가 합격하여 강의 시간에 들어온 것을 보고 몹시 놀라셨다. 내가 2학년 때 ‘현대문학’지의 추천을 거쳐 작가로 등단하자 사람들에게 자기 제자라며 자랑을 하셨다. 공대를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늘 별종이고 이단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 취업이 되면서 나는 점점 보통 사람이 되어갔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상사의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모범사원이 되었고 승진을 하자 부하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며 일하는 유능한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직도 나는 방황하는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위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으면서 나는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인간의 능력으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수문학에 매달렸던 나는 기독문학으로 전향해서 49권의 책을 썼다. 최근에 애착을 가지고 공들여 쓴 작품은 선지자 이사야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3부작 ‘임마누엘’인데 나는 그 제1부의제목을 ‘방황’으로 달았다.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도 십대의 방황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나의 경우와 비교해보며 그 전개와 방향을 추적해 보았던 것이다.


내 경우에 그 방황의 시절은 아름다웠다. 그냥 자신을 포기하고 팽개치는 방황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데서 오는 고뇌의 방황이었기에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다. 장발도 해보고 염색도 해보고 찢어진 바지도 입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미래를 위한 보석이 될 때 방황은 진정 멋진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