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9 >> 한 권의 책

한 권의 책

정숙현 (동서대학교 응용생명공학부)
 
데미안

 

    - 응용생명공학부 식품생명공학전공 정숙현교수

    오늘은 과학, 경제, 사회 등의 전반적인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많이 길어졌고, 나 또한 오늘을 살아가니 이런 흐름 속에 함께 흘러가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내 인생의 반쯤을 살았다고 하면 될 것 같고, 이것은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도 이만큼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체념하며, 수긍하며 또한 용기를 갖게 하는 책을 한 권쯤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이런 한 권의 책이 나에게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이 책은 헤세가 1919년 42세 때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밝고, 고상한 집안의 아들인 주인공 싱클레어가 어린 시절에는 바깥 세상에서 마주치는 비열하고 야비함에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아픔을 치르고, 조금 자라서는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선과 악의 대립으로 혼란에 괴로워하게 된다. 이때 데미안 이라는 이상적 삶을 사는, 신비스럽기도한 철학적 청년을 만난다. 그리고 이 청년이 싱클레어의 자아 형성에 길잡이가 되는 화두를 던지게 되고 늘 그의 곁에 머문다. 많은 인생에서 그러하듯 싱클레어도 베아트리체라는 성스러운 소녀를 만나지만 결과는 오히려 극단적인 자기학대를 하게 되고 더욱 퇴폐적 생활로 빠지게 된다. 이런 중에 싱클레어는 스승으로 기대고 싶은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그는 종교인의 집에서 태어나 종교인이 되고자 하였으나 현재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그는 싱클레어가 내면의 소리에 따라 혼란스럽게 살아가는데 있어 약간의 길잡이가 되기는 하였으나, 싱클레어의 영원한 스승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어 둘은 서로 작별을 하게 된다. 이런 고통과 갈등 끝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만나고 이 만남이 최종의 안식처로서 선과 악이 존재치 않으며 갈등과 대립이 없고 사랑만이 넘치는 신적인 형상으로 표현된다. 누구나 안길 때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존재의 어머니라고나 할까?

    싱클레어가 의문, 유혹, 호기심, 반항 등의 힘들고 어려운 긴 성장과정에서 데미안이 제시한 화두를 찾아 살아가고 이것은 결국 싱클레어가 진실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며 길가에서 부닥치는 어떠한 것들도 진실한 나를 찾는데 한 역할을 담당 하고 있고 또한 피할 수 없으며 필요한 과정 인 것을 보여 주고 결국은 사랑의 안식처에 이르는 삶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어떤 면에서 이 책은 너무나 정신적 세계를 다루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이 모두인 것 같은 요즈음에는 필요한 한 부분을 메꿀 수 있는 한 권의 책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싱클레어가 되어 이 책에 빠졌었고, 지금도 반쯤 와 있는 인생에서 나는 많은 순간 순간 소경처럼, 귀머거리처럼 내면의 소리를 외면한 채 사회의 제도권에 머리를 숙인 겁쟁이 였었다. 그럴 때 마다 이불 속에서 데미안을 펼치고 행동이 동반되지 않은 가슴으로만 그의 화두를 외치며 성장의 아픔으로 밤을 지새기도 한다.

     

    그 화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