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7 >> 독서문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 One City One Book

 

‘한 도시, 한 책’ 운동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


윤정옥 / 청주대학교 인문대학 문헌정보학과 전임강사,

(한국도서관협회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시범사업 코디네이터)


    금세기 국내외 도서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친 주요한 사건들 가운데 한 가지를 들라면 ‘한 도시, 한 책’ 운동(이하 ‘한 책One Book’ 운동)의 확산을 들 수 있겠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전자정보의 급증, 인터넷의 등장과 같은 변화가 도서관 안팎의 정보환경과 독서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책’ 운동을 통해 한 도시의 온 시민이 한 책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독서분위기를 진작하고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미국의 전역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적절한 동기가 부여된다면 시각적 자극, 웹의 격동과 디지털 정보의 급류에서 벗어나,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사람들의 잠재적인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 책’ 읽기 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8년 미국 워싱턴 주의 시애틀 시에서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시애틀 도서 센터가 ‘온 시애틀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If All Seattle Read the Same Book)’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러셀 뱅크스의《The Sweet Hereafter》를 읽고 토론하자고 한 것에서부터이다. 또한 이 ‘한 책’ 운동이 미국 전역과 해외로까지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8월 시카고 시와 시카고 공공도서관이 주관하여 하퍼 리의 퓰리처상 수상작인《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를 온 시카고 시민이 읽자고 했던 ‘한 책, 한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 행사가 외신을 통하여 알려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 책’ 운동의 확산 속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 책’ 운동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는 미국 국회도서관 도서 센터(The Center for the Book)의 웹사이트가 지난 2003년 5월에는 미국 내에서 모두 38개 주 90여 개 도시의 프로젝트, 9월에는 46개 주 및 캐나다, 영국, 호주를 포함한 153개의 프로젝트를 수록하였고, 2004년 5월에는 모두 48개 주의 239개 지역에서 수행된 프로젝트를 수록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국내에서 한국도서관협회와 충남 서산시가 지난해 10월 추진하였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또한 순천과 부산이 각각 독자적으로 수행한 ‘한 책’ 운동은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운동을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사례가 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책’ 운동은 대부분 도시를 단위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칸소 주, 델라웨어 주, 워싱턴 DC, 조지아 주 등과 같이 주(州) 전역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 실제로 참여하는 도시의 수는 웹사이트에 등록된 것보다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에서 2002년 수행된 ‘분노의 포도 읽기(California Stories: Reading the Grapes of Wrath)’ 프로젝트는 주 전역에서 모두 184개 도서관들이 참여하였고 1,000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그 규모가 매우 컸다. 또한 캐나다에서 2002년부터 매년 추진되고 있는 ‘Canada Reads’는 캘거리, 샬롯타운, 위니펙, 토론토와 같이 전국의 주요한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그러나 ‘한 책’ 운동의 가능성은 한 도시, 한 주 혹은 국가와 같이 지리적 공동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6월에 열린 미국도서관협회(ALA)의 연례 컨퍼런스는 ‘한 책, 한 컨퍼런스’의 기치를 들고, 참석한 모든 사서들이 캐나다 작가 마가렛 애트우드의《A Handmaid's Tales》를 읽고 토론하자고 하였고,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공통의 관심사를 갖는 사람들이 모인 어떤 형태, 성격, 크기의 공동체에서든 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느 직장에서는 ‘한 책, 한 일터’로, 어느 대학에서는 ‘한 책, 한 대학’, 혹은 ‘한 책, 한 클래스’와 같이 크고 작은 규모로 함께 독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는 데서 ‘한 책’ 운동이 보다 확산될 전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2001년 시카고에 이어, 2002년부터 2003년 사이에 모두 20개 지역에서《To Kill a Mockingbird》를 읽을 ‘한 책’으로 선정했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을 파고드는 한 권의 책을 온 국민이 다 함께 읽어보자고 하는 움직임도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한 책’ 운동이 일종의 혁신적 독서운동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기 위해서는 독서의 경험이 바로 지역사회의 주민이 공유하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확장시켜 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한 책’ 운동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게 하며, 누구든 토론의 인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애틀 공공도서관이나 시카고 공공도서관이 작성하여 배포한 ‘한 책’의 독서 지침서는 개인적 독서의 방향을 이끄는 동시에 다양한 수준과 분위기의 토론과 분석의 논제를 제공하여, 크고 작은 그룹에서 한 사람 이상이 토론을 인도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한 책’ 운동에서는 독서와 토론이 중심이 되는 동시에, 선정된 책 자체나 주제, 작가 등에 연관된 영화, 연극, 전시회와 같은 여러 행사를 마련하였다. 즉 독서운동이 배타적인 텍스트로서의 책을 읽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매체로도 같은 텍스트를 ‘체험’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 책’ 운동의 성공은 또한 시민들이 바로 독서의 참여자이자 독서운동의 주체 역할을 한다는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비록 ‘한 책’ 프로젝트는 거의 대부분 공공도서관이 전면에서 주관하고 있지만, 도서관이나 사서가 일방적인 운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개인, 학교, 각급 기관과 시민단체들이 도서의 선정 과정에서부터 행사의 진행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1970,80년대에 국가가 지정해 준 ‘자유교양도서’ 읽기 혹은 ‘반공도서’ 읽기와 같은 관제의 독서운동을 경험한 중․장년층이나, 독서는 단지 대입 논술고사 대비용일 뿐인 청소년층에게, 공중파 TV 방송의 흥분된 분위기 띄우기에 힘겹게 기대지 않고도, 시민이 스스로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한 책’ 운동이 아직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산, 순천, 부산의 ‘한 책’ 운동이 공공도서관, 시, 교육청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기관에서 각각 시작되었으나, ‘책을 읽자’는 메시지를 받아들인 수많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호응이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 한다! 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출처 : 출판문화, 2004년 7월호(통권4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