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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이창영 (동서대학교 정보시스템학부)
 
장길산을 읽고...

<장길산을 읽고...>

     

    나는 누구한테 건 책ㆍ영화ㆍ음악 등을 추천하지 않는다. 나의 좋고 싫음에 동감하기보다는 반대의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어,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황석영 선생님의 "장길산"을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문학에 청맹과니인 내가 감히 황석영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뭔가를 적는다는 것이 염려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훌륭한 문학작품을 추천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

     

    황석영 선생님은 만주 신경 출생으로,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하셨다. 1962년 《사상계》신인문학상에 <입석부근>으로 입선, 그리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탑>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셨다. 대하 역사소설 <장길산>은 십여 년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된 것으로, 조선시대 민중들의 힘없는 삶과 그 안에 미륵신앙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던 유토피아적 의식을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장길산은 도피중인 여비(女婢)로부터 출생하여 광대의 일원으로 자라난다. 만적이나 임꺽정이 그러했듯이, 길산 또한 사회의 최하 계층에서 인간 군상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평등에 대한 감정을 싹틔우게 된다. 산천을 떠돌던 길산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그의 집에서 하루를 유숙한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간밤에 그 집 딸을 취한 것을 알고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절망에 빠진다. 얕은 재주를 피운 댓가로 잠자리와 음식을 대접받는 것도 모자라, 비록 취중이라고는 하지만 한 여인을 자신의 하룻밤 욕망의 재물로 삼았던 것이다. 좌절한 그는 죽음을 결심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하여 목숨 대신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의식을 치른 후, 길산은 전인(全人)으로서의 모습을 갖춰나가게 된다.

     

    산채에 은거하며 관군에 대한 방어를 주로 모색하던 임꺽정과는 달리, 길산은 여러 면에서 조직적이고 활동 범위가 넓었다. 송도상인 박대근과의 협력을 통한 경제활동, 기병대에 의한 기동력, 화승총으로의 무장, 승려들과의 결탁 등은 그 예이다. 그 당시 대동사상이 서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었는데, 한 자료에 의하면 장길산은 조정을 뒤엎는 모반까지도 계획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소설 <장길산>은 재미있다. 질박한 토속어가 감칠나게 녹아있어, 책 자체가 살아있는 우리 것들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황석영 선생님이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어 계신 동안,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우리말을 가두어 두는 행위를 중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여러 등장인물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묘옥과의 애절한 사랑은 물질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남을 해코지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외가 없을 것이다.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고달근같은 인물을 보고 최소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 책이 주는 하나의 작은 가르침을 얻었다 할 것이다. 영웅이 없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길산은 많은 의미를 던져주리라 확신한다.